당신의 과녁. 뒤늦게 이 웹툰을 보았습니다. 작화는 조금 투박합니다만 이토록 진중하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웹툰을 근래에 보았던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무엇보다 메시지의 전달에 있어서 무척 현실적이며 작위적이지 않다는 점이 훌륭합니다. 리뷰를 적기에 앞서 꼭 읽어보시라는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먼저 이 웹툰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유명 유튜브 '지무비'에서 본 웹툰을 29화까지 다룬 요약본 때문입니다. 영상을 틀어두시고 글을 읽으셔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간단한 줄거리
이 웹툰은 그저 20대의 평범한 남자, 어떻게 보면 자신의 삶에 감사하며 착하게 살아가는 괜찮은 청춘이 우연히 배푼 호의로 인해 범죄자로 몰리게 되고 억울한 17년 동안 감옥 생활을 하고 나온 뒤, 복수를 결심하고 계획하며 실행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실제 살인마였던 노인이 짐을 들어주려다가 오히려 그 범죄자가 만든 함정에 빠져 모든 증거는 주인공 최엽이 범인인 것으로 몰리고, 그로 인해 사랑했던 연인과 이별하고 그의 가족들은 잔인한 살인마의 가족으로 사회적 심판을 당합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어머니 아들의 무죄를 1인 시위하다가 갑작스럽게 뇌졸증에 쓰러지지만 행인 중에 아무도 돕지 않아 결국 코마 상태에 빠지죠.
실제 살인마 였던 이는 신을 조롱하며 (살인을 저지르는 자신을 단죄하지 않는) 자연사를 하게 되고, 뒤늦게 그가 남긴 범죄 현장 사진과 기록을 발견한 가족은 경찰에 신고하려 하지만 (주인공 최엽이 잡혔다는 사실을 알고) 그들에게 돌아올 살인자의 가족이라는 멍에를 두려워해 딱 10년만 입을 닫기로 합니다.
이렇게 17년, 뒤늦게 사실을 밝힌 그들 덕분에 재심을 통해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풀려났던 것이죠. 그러나 주인공 최엽은 자신이 당한 고통과 가족들이 받은 사회적 심판에 분노하며 죽어버린 살인마를 대신해서 그의 가족 중, 손녀를 잡아 17년간 가두어 두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이 만화의 가장 휼륭한 부분은 많은 질문을 던진다는 것입니다. 아주 무거우면서도 또 간간이 나오는 만화적인 유머도 담고 있습니다. 철저히 현실적이면서도 적절하게 극적인 판타지(인간관계)는 짓눌릴 듯한 기분을 풀어주는 텐션의 적절함이 있습니다.
이 점에서 작가 고태호의 서사 즉 이야기의 강한 힘과 동시에 만화가로써의 위트를 함께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꼭 극화될 수 있기를 기대하며, 그로 인해 단순히 웹툰에서 머물지 않고 여러가지 문제에 대해 사회가 같이 고민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질문. 사형에 대한 고민
우리나라는 사형제가 아직 남아 있지만, 실제로는 폐지 국가이기도 합니다. 1997년 마지막 집행 이후 아직까지 사형수에 대한 집행이 진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만화를 통해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됩니다. 만약 주인공 최엽이 사형 집행을 당했다면 그의 무죄가 밝혀진다 한들 과연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요?

그러나 저는 사형의 집행에 있어서 찬성론자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이유는 이 글의 맨 마지막에 밝히기로 하겠습니다만 결코 간단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과 피해자가 되는 것은 분명 다르기 때문입니다.
용서, 어떻게 보면 가장 현명하고 현실적으로도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복수를 한다고 해서, 누군가를 미워한다고 해서 얻어질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온전히 피해자가 된다면 그 피눈물을 씻어 낼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요? 심지어 편안한 사형에 대해서 조차 위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사회적으로도 그러합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감호시설(감옥)과 삼시 세 끼의 식사. 살인자 중에는 강호순, 조두순과 같이 도저히 인간이라고 부르기에도 잔혹한 범죄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죽인 여럿의 목숨을 과연 하나의 사형으로 끝내는 것 또한 정당해 보이지 않습니다.
사형제 폐지에 대해서 만큼은 무조건 반대입니다. 집행에 대한 여러 고민은 필요하겠지만, 법적으로 최고형이라는 상징성을 이해서라도 사형은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집행은 과연 어떤가. 지금 현실 속에서 이 웹툰의 주인공 같은 사형수가 없으리라는 보장은 있을까? 그리고 실제로 다수의 사형수 혹은 범죄자들이 잘못된 수사과정에 의해 죄인으로 몰리는 경우들이 적잖게 있기 때문입니다.
질문. 잘못된 수사와 판결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가?
판단이란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나라는 '무죄 추정의 원칙'과 '증거주의'에 입각해서 형사법을 집행하는 원천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뻔히 범인인데도 증거 부족으로 죄인이 풀려나기도 하며, 심지어 검찰은 기소를 하지 않는 방식으로 법을 잘못 사용하기도 합니다.
더 심한 경우는 증거조작등을 통해 경찰 혹은 검찰이 사건을 조작하는 경우들도 대한민국의 사법제도가 만들어 진 이후 적지 않았으며, 다수의 간첩 조작 사건들이 그렇게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어 냈습니다.

물론 이런 잘못된 수감생활에 대해 국가는 손해배상을 하게 됩니다. (이 또한 민사소송을 해야만) 그러나 물질적 보상으로 과연 충분할까요? 무엇보다 우리들은 의도적 조작을 통해 범인을 만들어 내었던 이들이 사과는커녕 모르쇠로 일관하는 모습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물론 의도적이지 않게 잘못된 판결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모든 것에 책임을 묻는 다면 과연 누가 적극적으로 공권력을 행사하려고 하겠습니까? 그렇기에 참 쉽지 않는 부분입니다. 적당히 면책을 해줘야 하고, 적당히 책임을 물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어느 쪽이 되느냐에 따라 의견이 달라질 것입니다.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제가 생각하는 답이라면 확실하게 의도성이 드러나 조작 수사와 논리 모순이 되는 판결에 대해서는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질문. 사적 복수는 정당한가?
2020년대가 이제 딱 절반의 시기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런데 2020년대만큼 사적복수와 관련된 문화 컨텐츠가 많았던 적이 있을까 싶을 만큼 우리나라에는 여러 가지 매체를 통해서 이 답답한 현실을 가상으로라도 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최엽 역시 자신이 당한 고통에 대해 사적 복수를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만화가 한 단계 더 고민하게 만드는 것은 실제로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자는 이미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복수는 범죄자의 가족을 똑같이 납치해서 가두어 두려는 것입니다. 물론 주변에서는 이 행위에 대해 수많은 설득을 합니다.
이 웹툰은 이 갑론을박을의 상황을 캘릭터들을 통해서 보여줍니다. 그 이야기를 쫓아가다 보면 어느 이야기에 더 공감이 되면서도 정말 쉽지 않은 무엇인가 느껴집니다. 앞서 말했듯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스스로의 목숨을 끊고 싶을 만큼의 고통을 겪고 있으며 이것을 온전히 이해한다? 과연 가능할까요?

그렇다고 아무죄도 없는 가족에게 그 책임을 묻는다? 물론 여기에 작가는 한 단계의 더 고민스러운 설정을 해두었습니다. 범죄 사실을 알고 바로 경찰서에 가서 사실을 알렸더라면, 주인공의 불행은 7년에서 마무리될 수 있었을 거란 겁니다. 결국 그 가족에게도 적당한 만큼의 죄를 짓게 설정해 두었다는 것이죠.
그렇다고 그 가족을 비난할 수 있을까? 간단치 않습니다. 그저 이건 개인의 선택의 문제라고 봅니다. 하지만 이런 선택과 답답함을 만든 것은 현재 우리 사법제도의 여러가지 문제점에 대해서 지적할 수밖에 없습니다.
죄에 비해 너무 가벼운 형량, 전관예우와 같은 법조계의 카르텔로 인해 사법제도 자체에 대한 불신, 화이트 칼러 범죄에 대해 관대한 판결 등등.
이 부분은 가상화폐 사기 사건으로 테라, 루나의 주범 권도형이 무려 6조를 내고서라도 한국에서 재판을 받으려는 노력하는 모습에서 증명되고 있습니다. 얼마나 우리의 법이 돈 있는 자들에게 관대한지 보여주는 반증입니다. 반면 버스비 600원을 횡령했다고 실형을 사는 경우도 있죠.

물론 권도형은 2024년 12월에 미국에서 판결을 받는 것으로 확정을 받았으며, 예상되는 형량은 100년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사적 복수를 너머 한국의 사법제도에 대해 전반적인 수술이 필요하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질문. 어떻게 살아야 하나?
살인자는 천수를 누리며 자연사를 합니다. 그는 살인을 저지르는 내내 신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그런 신에 대해 조롱하며 죽음을 맞이하죠.
반면 그런 살인자에 의해 누명을 쓰던 주인공은 충분히 여러 차례 풀려날 수 있는 기회들이 있었습니다만, 권력과 융통성이라는 원칙을 벗어난 행위에 17년이라는 세월을 억울한 옥사리를 하게 됩니다.



누군가는 이 만화를 보며 과연 신은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도 있을 겁니다. 왜냐면 이 이야기는 단순히 웹툰에 존재하는 허구로 끝나지 않고 우리 현실 속에 수많은 사실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주인공이 행하려면 복수도 정당해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이 만화를 보는 다수는 피해자이기보다 관찰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만약 내가 저 입장이라면 어떨까?
내가 만약 저 입장이라면?
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용서할 수 있을까?
자수할 수 있을까?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웹툰이 드라마로 재 탄생하기 바라는 것은 보다 사회적인 질문과 공론이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만큼 '나의 과녁'은 훌륭한 작품입니다. 이 웹툰의 제목은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가해자도 피해자도 그 관련자들도 아니면서, 우리는 이런 웹툰에서도 감정을 이입합니다. 그리고 현실 속 사건 속에서도 그런 자기감정에 따른 가치 판단 기준을 가지고 언론이 알려주는 사실(?)이라 믿는 것을 토대로 마녀사냥을 합니다. 결국 우리의 과녁은 정말 쏘아도 되는 대상일까요?
무수히 날려대는 가벼운 장난 같은, 때로는 정의감에 사로잡힌 행동이나 말, 인터넷 댓글을 통해 우리가 맞혀도 된다고 생각하는 과녁이 혹시 '사람'이라는 것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이런 지성에 기댄 질문 때문에 진짜 범죄자들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사실도 있으니,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기계적인 중립도 옳은 것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니 고민입니다.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결국 우연에 의해 벌어진 일들입니다. 이 세상의 불행도, 행운도, 그 어떠한 일도.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쉽게 정의할 수는 없습니다. 그저 지금 내가 무조건 옳다는 생각을 버리고, 한 번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의심을 품고 겸손하려는 노력 정도를 하는 것 밖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웹툰은 의외의 반전스러운 상황을 던지면서 더욱 이런 의문들에 복잡한 경우의 수들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것이든, 저것이든 결국 인생입니다. 모두 우연이며 그 우연에 적절한 행동을 맡기고, 그 행동에 책임을 지는 것. 그리고 이런 문제들에 대해 사회적인 합의를 이끄는 질문과 토론을 거쳐서 어떤 원칙을 정하는 것.
물론 완벽한 것은 없습니다. 한 생명을 가지고 맞다 틀리다 격론을 벌이는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는 교통사고로 1명 사망이라며 한 줄 기사로 죽어가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 죽음에 모두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요?
때로는 억울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결론과 반칙에 대한 합리적인 처벌, 부당한 것에 대한 적절한 조치, 그런 과정에서 실수가 발견되었을 때 보상, 그리고 그것이 실수가 아니라 의도였을 때, 징벌적인 처벌을 세우고, 나아갈 수밖에 더 있을까요? 사회는 결국 그렇게 발전해 나가는 것 같습니다.
정말 좋은 웹툰이었습니다. 이야기도, 여러 가지 극적인 상황도, 그 과정에서 펼쳐지는 여러 논쟁들도, 그리고 결말도. 지금의 우리 사회에 많은 질문을 남기게 하는 작품이었으며 무엇보다 그 감정을 너무나 잘 드러낸 거칠고 투박하지만 잘 표현된 그림까지.
10점 만점에 9점을 줄 만큼 가치 있는 작품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당신의 과녁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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