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어쩌다가 대학가요제를 꿈꾸게 되었나?
그런 제가 뜬금없이 대학가요제에 출전했다는 것은 학교 내에서 저를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핫이슈였습니다. 그저 군입대에서 만난 훈련소 동기가 음악을 하던 친구였던 것이 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죠.
군대란 곳이..사회에서 있던 이야기 하다 보면 뻥도 좀 섞이고 뭐~ 그러잖습니까? 그러다가 제가 만든 음악을 한번 흥얼거리게 되었고, 멜로디가 괜찮다는 거였죠. 그러면서 대학가요제 한번 나가보자가 하더라고요.
그리고 훈련소 1달 마치곤, 그냥 꾸준히 연락하다가 제대해서 만나서, 정말 제가 만든 음악을 첨으로 들려주었더니 진짜로 한번 나가보자고 하더라고요.
당시 국내에는 강변가요제, 대학가요제가 일종의 지금의 오디션 프로와 같은 위치였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90년대 중, 후반을 넘어서면서 이런 위상은 조금씩 약화되어 가던 시기입니다.
실제로 '육각수' 이후 이렇다 할 퍼포먼스를 이룬 가요제 출신 가수들이 거의 없었습니다만, 아무튼 옆구리 팍팍 쑤셔대니, 저도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죠.
게다가 군입대 이후, 기타를 독학하면서 어느 순간 정말 머릿속에 떠오르는 악상을 기타를 통해 만들어 내는 경지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물론 악보를 그리거나 하진 못하고, 순전히 코드를 적고 멜로디는 암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이미 40~50곡 정도를 작곡을 해둔 것이었죠. (그중 상당수는 현재, 기록의 소실과 기억의 망실로 인하여 사라졌습니다. ㅠ.,ㅠ)
정확히 기억은 못하지만, 하루에 5곡씩을 작곡하기도 했으니 아마 그 수는 더 많을 겁니다. 그 이전 패턴을 만들던 BGM이 아닌 기승전결을 갖춘 대중음악 다운 작곡이 가능했던 것이죠.
그렇게 '널 위해서'라는 곡은 작곡에 10~20분 정도가 걸렸으며, 작사는 커피숍에서 알바를 하며 냅킨에 적어 초안을 잡았습니다. 사실 그 이전에 하나 만든 곡은 당신 같이 출전하려던 2명의 친구에게 뺀치를 먹었죠.
그러나 이 곡은 모두 괜찮다고 평했고, 이걸로 가보자고 의견을 맞추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편곡이었죠.
일단 악기 연주가 모두 잼병이었습니다. 저는 세컨드 기타 정도는 가능했지만, 메인을 이끌기엔 부족했고, 친구 역시 피아노를 연주할 수는 있었지만, 제가 생각하는 사운드를 소화할 정도는 아니었죠.
6. 전자음악의 시퀀싱으로 사운드를 만들어야 한다!.
편곡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사실 잘 몰랐습니다. 시퀀싱을 한다는 자체가 저에게는 작곡이자, 편곡이었죠. 그러나 가요제에 나갈 곡까지 만들 만큼의 자신은 없었습니다.
궁여지책으로, 편곡을 위해 그룹사운드에 찾아가 악기를 쓰는 여러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런 과정에서 여러 가지 실험에 해당되는 곡들도 만들게 되었으며, 그 곡 중에 하나가 이전 LB20 5번째 곡 '상대성 이론'이죠.
그렇게 조금씩 사운드를 구사하는 테스트를 하며, 거의 이 곡은 편곡만 10번 이상을 했었습니다. 뒤쪽에 잔잔하게 들어가는 사운드들도 채우고, 메인으로 드러나는 사운드를 까는 등, 정말 쉽지 않은 작업이었죠.
사실상 중간에 강변가요제에 데모테이프를 만들어 출전해 보았습니다만, 보기 좋게 예선 탈락이었죠. 그 결과는 우리 스스로에 대한 의심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렇게 그냥 팀자체가 와해된다고 생각하고, 저 자신도 사실상 대학가요제 출전에 대한 의지가 사그라 들었습니다. (애당초 음악에 대한 어떤 목표의식이 있던 것도 아니므로)
7. 대학가요제 나가보자!!
그런데 어느 날 친구가 전화가 온 거였죠. "광고 떴다 나가보자."
전 사실 대학가요제의 개최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었지만, 친구는 홍보물을 보았던 것이죠. 그렇게 다시 한번 불을 지펴보기로 하고, 처음 실패를 거울삼아 음악을 조금 더 보강을 해봅니다.
큰 가닥보다는 정말 미세한 볼륨의 조정 같은 것으로 실제 연주에 더 가까워지려는 노력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큰 자신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일단 출전을 해보았죠. 데모테이프를 보내고, 결과를 기다렸는데 1차 예선 통과!!
그리고 마산 MBC 방송국에서 실제 연주를 하면서 2차 예선이 있었습니다. 커다란 무대에 처음으로 서 보게 된 저로썬, 그 긴장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그렇게 남 앞에 나서는 걸 썩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었기에, 정말 다리가 덜덜덜 떨리게 몸으로 전해질 정도였습니다. 식은땀은 나고 긴장되었지만, 어찌어찌 기타 치면서 노래를 마치고 무대에 내려왔었습니다.
의자에 앉아서 호흡을 고르는데, 옆에 어떤 아저씨 한 분이 약간 놀란 눈으로 저한테 이렇게 물으시더군요
이 곡, 직접 만드신 겁니까?
아직 가슴이 제대로 진정되지 않은 상황인지라 그분이 누군지도 모르겠거니와, 대학가요제는 출전 자격자체가 '대학생'이 만든 곡으로 출전을 해야만 한다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렇다고 답을 했더니, 상당히 놀라는 표정으로 저를 보시더라고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분이 경남 대학가요제 PD 셨습니다.
그렇게 2차 예선을 마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썩 반응이 좋지 않았습니다. 사실 당시에 밴드 동아리 선배도 출전하고 싶으시다고 곡을 하나 만들어 드렸죠. 저랑 바짝 붙어서 세세한 편곡까지 옆에서 프로듀싱해가면서 본인이 원하는 데로 편곡을 했었죠. (그 곡은 데이터 망실로 사라졌습니다. 드럼이 무척 끝내줬죠. - 드러머가 직접 프로듀싱 한 곡이라)
얼마나 지났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별다른 소식도 없었고, 같이 출전한 선배의 반응도 영 좋지 않아서 둘 다 탈락으로 생각하던 찰나에, 친구로부터 합격 통보 소식을 들었습니다.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란 그럴 때 쓰는 거더군요. 음악 무지렁이가~.. 대학가요제 지역 본선까지 진출을 하게 된 것이죠.
8. 사운드에 대한 의심을 지우다
당시 저는 충무(현 통영)에 살았고, 친구는 마산에 살았었기에 왕래가 쉽진 않았습니다. (시외버스로만 1시간, 집까지 가려면 족히 2시간)
2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과연 486 컴퓨터의 400KB도 안 되는 사운드 폰트를 사용한 MOD 음악으로 방송 출연이 가능한가? 내 편곡은 문제가 없는가? - 즉 사운드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노래 연습. 작곡만 잘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었죠. 실제 노래도 잘 불러야 했으며, 곡이 그리 쉬운 놈이 아니었죠.
일단 친구의 친구가 언더그라운드지만 음악활동을 하고 있었고, 기성 작곡가 분을 알고 있어서 편곡을 부탁했었는데, 평가는 손댈 것이 없다. 이 정도를 대학생이 만들었다면 훌륭하다며 약간의 믹싱만 해주셔서 MR 테이프로 건네주었습니다.
당시 MR테이프로 10만 원짜리 공테입을 처음으로 사보았죠. (음악이란 거, 돈이 꽤 드는 분야입니다. N빵으로 샀지만... 당시 호주머니 사정을 생각한다면 정말 큰돈이었답니다)
사운드에 대한 의심은 그 한마디로 모두 싹 지워버렸습니다. 그리고 자신감도 생겼죠. 그리고 2차 예선 때 제 음악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던 분이 PD란 사실을 알고, 거의 Full Charging!
이제 남은 건 노래뿐!!. 그런데 연습을 좀 해야 하는데 (예선 때도 따로 연습을 하지 않았었습니다.), 어떡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의논 끝에, 학교 측에 이야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9. 온 동네 소문이 나다.
본래는 그냥 저 혼자 조~~ 용~~ 히 갔다가 오는 게 목표였는데, 무단결석을 하게 되면 성적에 영향을 끼치므로 어쩔 수 없이 수업을 마치고 교수님한테 스~~ 윽 다가가서 조용히 말씀을 드렸습니다.
교수님, 저 개인 사정이 있어서 한 3일만 수업을 빠져야 할 것 같습니다.
뭐 당연히 이유를 물으셨고, 저는 조용히... 제가 대학가요제에 나가게 되었습니다라고 했더니. 아주 큰소리로 "네가 대학가요제에 나간다고?" 하는 거였죠.
덕분에 온 동네방네 다 알게 된 것이죠. 제가 취미로 음악을 끄적거린다 정도는 친한 사람들, 혹은 컴퓨터 동아리 사람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맨날 그거 잡고 있으니)
그러나 대학가요제까지 나간다는 것은 그들에게도 상상치 못했던 부분이었을 겁니다. (저 자신도 믿지 못한 부분이니) 그렇게, 교수님들한테 황당한 표정과 응원을 동시에 받으며 1998년 경남 대학가요제 본선에 출전을 하게 된 것이죠.
얼마나 조용히 이루어졌냐면, 보통 응원하는 사람들 몇 정도는 플랜카드 들고 오지만, 저희는 그런 것조차 없었습니다. 심지어 모 대학의 통영캠퍼스에 재학 중이던 저는 본교에서 예선통과한 팀과 만나서 경쟁을 했었죠.
생뚱맞은 표정으로 보던 기억이 납니다. 같은 학교인데, 첨 보는 녀석인데 같은~
같이 출전하던 친구 역시, 평소에 자신이 음악작업을 하던 것은 아닌지라, 지역 본선 참가 이후, 학교 동아리 사람들이 아는 정도였습니다. (학교를 빠질 필요가 없으니 알릴 필요도 없었던 것이죠)
그렇게 창원전문대에서 치러진 대회에서 결과적으로 입상은 실패!. PD 셨던 분은 무척이나 안타까워했으며, 꼭 내년에도 출전하라 하셨고, 출연료로 받은 10만 원은 친구 쪽 동아리 사람들과 밤사이 진탕 술 먹으며 소진!
그렇게 세기말, 예상치 못한 음악으로 방송에 얼굴 타버린 탓에 (비록 경남에 국한되었지만) 학교에는 한동안 얼굴을 들고 다니기 난감하였으며, 매회 MBC 대학가요제 개최 방송만 나오면
올해는 안 나가냐?
졸업 전까지 교수님과 같은 과 사람들에게 질문을 받는 통에, 뭐랄까 복잡한 감정을 겪어야만 했었죠. 사실 이렇다 할 타이틀을 얻지 못한 것이 소위 굉장히 쪽팔렸습니다.
그러나, 좋은 추억이기도 했으며, 제가 만든 음악에 대한 인정을 얻는 계기였기도 했기에, 작곡가라는 꿈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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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ok Back to the 20th boy
1. 아이의 종소리 in 1996, B.A.S.S vol 1
2. 벌레의 날개 in 1999, 소리마을 Chip Tune Sound
3. Report 1998 in 1998, 소리마을 1998 콘테스트 입상작
4. 세상의 벽 in 1998, B.A.S.S Vol 6
5. 상대성 이론(E=MC스퀘어제곱) in 1998 B.A.S.S Vol.7.5
6. 널 위해서 in 1997 (801band 리뉴얼 버전 in 2006)
7. 구지가 (九地歌) in 1999, About 9
8. 세상의 벽 메탈에디션 in 2022
9. 출구 in 1999, About 9
0. You don't have Think - 22년 대통령선거 결과 발표 후 군중심리에게 바치는 노래
모든 작사, 작곡 및 편곡 : 9oC
기타 작업
801 - 널 위해서 리뉴얼 사운드 프로그램(큐베이스), main Guitar, 믹싱
김성민 - 구지가 보컬, 코러스
유충란 - 구지가 보컬
9oC - 구지가 보컬, 코러스 / 널 위해서 보컬, 출구 보컬 및 Gui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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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 프로그램 - 스크림 트래커 (확장자 S3M), 임펄스 트래커 (확장자 IT), fl-studio (확장자 flp)
사용 장비 - 486 Dx 인텔컴퓨터, 사운드 블래스트, 전자기타(10만 원대 보급형)
본 곡의 저작권은 9oC에게 있으며, 무단 사용은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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